서울 종로구 재난 대피소 5곳 직접 가보니, 현실은 이렇다

서울 한복판, 종로구는 낮에는 수십만 명의 유동 인구가 몰리는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다. 관광객, 공무원, 상인,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밀집한 이 지역에서, 만약 대규모 지진이나 화재, 테러와 같은 재난이 발생한다면 어디로 피해야 할까? 재난대피소는 이런 상황에서 생명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공간이지만, 평소 우리가 그 존재를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행정안전부나 서울시 공식 포털에는 ‘재난대피소 위치’가 공개되어 있지만, 실제로 해당 장소가 유사시에 정말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지, 혹은 그 장소에 일반 시민이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는 경험 없이는 알기 어렵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 종로구 내 대표적인 재난대피소 5곳을 선정해 직접 발로 뛰며 점검한 내용을 바탕으로, 위치, 접근성, 실내외 환경, 설비, 시민 대응 가능성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 실제 체험을 통해 그 속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재난 대피소 위치와 접근성: 생각보다 복잡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종로구청 근처의 종로구민회관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대로변에서 진입로가 좁고, 표지판이 부족해 위치를 찾는 데 시간이 다소 걸렸다. 특히 야간이나 비상시 조명이 부족하면 찾기 어렵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건물 외부에는 대피소라는 표기가 눈에 띄지 않아, 일반 시민은 긴급상황에서 해당 장소를 인지하기 어려워 보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창신초등학교는 재난대피소로 등록되어 있었으나, 평소에는 일반 학교 건물로 운영되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은 제한적이었다. 안내문조차 ‘관계자 외 출입금지’로 되어 있어, 재난 발생 시 어떻게 개방될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세 번째 장소였던 사직공원 야외무대는 개방형이라 접근은 쉬웠지만, 벤치 수가 매우 부족했고,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였다. 비상천막이나 임시 구조물이 없는 상태에서는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네 번째로 방문한 서울노인복지센터 옥상 대피소는 의외로 청결했고 바람이 잘 통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고령자나 장애인의 접근성이 매우 떨어졌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경운중학교 운동장이었다. 학교 측 협조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으며, 낮 시간에는 접근이 용이했으나 야간 조명이나 화장실 안내는 거의 없었다.
결론적으로, 종로구 내 대피소들은 문서상으로는 도심에 고르게 분포해 있지만, 실제로는 찾기 어렵거나 진입이 까다롭고, 긴급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빠르게 모일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은 드물었다.

내부 시설과 실질적 수용 능력은?

재난대피소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대피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특히 내부 시설의 실질적 수용 능력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종로문화체육센터의 경우 지하에 비상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환기 시스템이 제한적이고, 위급 시 사용할 수 있는 휴대 조명이나 방송 장비는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먼지가 많아 청소 상태가 미흡했으며, 비상구 방향 안내도 일관되지 않아 위기 시 혼란이 예상됐다.
종로구민회관의 경우 화장실이 지하 1층에만 있었고, 대기 공간이 협소했다. 만약 수백 명이 한꺼번에 대피할 경우 줄이 길어지고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비상용 구호 물품이나 생수 비치 여부는 대부분의 대피소에서 확인할 수 없었고,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하자 “실제 재난 시에만 물자가 배치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는 재난 초기 6시간~24시간 동안의 ‘골든타임’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다.
반면 서울장학재단 건물 지하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방재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내부에 CCTV, 통신장비가 설치되어 있어 긴급 통제에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이 공간은 평소에는 폐쇄되어 있어 실사용 가능성에 의문이 들었다.
이처럼 종로구의 대피소는 물리적 공간만을 기준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재난 대응 능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개선 필요성과 시민 인식의 격차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낀 문제는 '시민 인식'과 '현실 대피소 시스템' 간의 괴리였다. 실제로 대피소를 방문하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간단히 질문을 해본 결과, 10명 중 7명은 “우리 동네 대피소가 어디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일부는 “그런 게 있었냐”는 반응을 보였고, 또 어떤 이들은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말을 하며 대피 개념 자체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기후 위기, 대형 화재, 지진 등 재난 발생 빈도는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종로구는 유동 인구와 차량 밀집도가 높기 때문에 화재나 붕괴 등의 복합 재난 시 대피 동선이 교차되며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피소 운영 시스템은 단순 지정과 포털 내 위치 정보 제공에 그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실질적인 ‘사용성 점검’과 ‘시뮬레이션 훈련’을 기반으로 대피소 운영 체계를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에게는 재난 문자 외에도 생활 밀착형 교육과 리플렛, 커뮤니티 행사 등을 통해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재난은 단 한 번의 순간으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그 순간에 대피소가 ‘존재만 하는 공간’이 아닌 ‘실제로 기능하는 공간’이 되어야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은 직접 발로 뛰며 종로구의 재난대피소를 탐방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서대문구’의 대피소 현실을 다룰 예정이니 관심 있는 분은 즐겨찾기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