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관광 명소 속 잠재된 재난 위험
강릉은 사계절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동해안 도시다. 경포해변, 안목커피거리, 정동진 등 유명한 해안 명소들이 즐비하고, 최근에는 서핑과 캠핑 등으로 젊은 층 유입도 많아졌다. 그러나 바다를 낀 도시는 언제든 재난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동해안은 ‘쓰나미(지진해일)’ 위험지대로 수차례 지적되어 왔다. 일본이나 러시아 인근 해역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몇십 분 안에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강릉 해안가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재난”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재난 대피소가 어딘지조차 모른 채 해변에서 캠핑을 하거나 숙박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 글에서는 강릉 해안가 인근에 설치된 재난 대피소 5곳 이상을 직접 탐방하여, ‘쓰나미 대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를 평가했다. 단순히 위치 확인을 넘어서 고도, 접근성, 수용 능력, 표지판 유무, 설비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실제 체험 후기를 공유한다.
해안가 재난 대피소 5곳 실측 결과: 위치는 있지만 안내는 없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경포해변 북쪽에 위치한 경포고등학교 운동장이었다. 학교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지형상으로는 대피소로 적합했다. 그러나 운동장 외부에는 ‘지정 대피소’라는 표지판 하나 없었고, 평소에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재난 시 개방된다는 안내도 전혀 없었다.
두 번째는 강문해변 위쪽 언덕에 위치한 강문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2층은 재난 대피소로 지정돼 있었지만, 외부에는 작은 표지판 하나만 달려 있어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은 인지하기 힘들다. 계단이 가파르고, 장애인이나 고령자의 접근은 매우 어려웠다.
세 번째는 안목해변 남단의 초당동 주민센터 건물 옥상에 비상 대피소가 지정되어 있으나, 주민센터 운영 시간이 끝나면 출입 자체가 어렵고, 비상 출입문은 폐쇄되어 있었다. 해변과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야간에는 조명이 부족하고 표지판도 어두운 곳에 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네 번째는 정동진역 뒤편 산책로 입구 공터다. 이곳은 차량 진입이 어렵고, 일부 계단 구간은 미끄럽고 위험했다. 자연 경사를 활용해 고지대 대피소로 설정되어 있지만, 시설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고, 그늘이나 벤치조차 없었다.
다섯 번째로 확인한 곳은 강릉시청에서 지정한 ‘긴급 대피소’ 목록에 포함된 초당초등학교였다. 그러나 학교 외벽에는 대피소 관련 표식이 없었고, 운동장은 수업 시간 외에는 폐쇄된 상태였다.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니 “거기가 대피소인지 처음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인식이 낮았다.
결론적으로, 강릉 해안 대피소들은 물리적 장소는 존재하지만, 안내 체계와 가시성 부족, 실제 접근 가능성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쓰나미 대비는 실제로 가능한가? 재난 대피소의 구조적 문제를 따져보다
강릉 해안 대피소들을 직접 확인한 결과,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간’ 대비 ‘동선’의 비효율성이다. 만약 동해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하고, 30~40분 내에 해일이 밀려온다면, 해변가에서 대피소까지 도보로 올라갈 수 있는 시간은 채 15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피소 대부분은 고지대에 위치하거나 폐쇄된 학교, 주민센터 건물 내부에 있고, 이 중 대피소임을 명확히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곳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또한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해일 발생 시 대피 경로’가 표시된 작은 표지판이 가끔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녹슬었거나 색이 바래 있어 시인성이 떨어졌다. 특히 야간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시야 확보가 어려워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피소에는 화장실, 응급처치 키트, 물품 보관함, 생수 등 기본 비상 물자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지역 주민 몇 명에게 물어보니 “지정은 되어 있지만, 실제 재난 상황엔 그냥 산 쪽으로 도망갈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실제 과거에도 강릉은 태풍, 폭우, 강풍 등의 자연재해를 수차례 겪었고, 정전과 통신 두절이 일시적으로 발생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들이 대피소 운영 매뉴얼에 반영되어 있거나, 시민 교육과 연결되어 있는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즉, 강릉 해안의 대피소 체계는 존재는 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가까웠다. 실질적인 대피를 위해서는 단순히 공간 확보를 넘어서, 시간 안에 누구나 쉽게 이동하고, 머물 수 있는 구조와 장비, 안내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제언: 보이는 재난 대피소로 만들자
강릉시가 진정으로 해안가 시민들과 관광객의 안전을 보장하려면, 지금과 같은 문서상 대피소가 아닌, 눈에 띄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이는 대피소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전 구간 시각 표지판 개선이 시급하다. 고지대 대피소까지 연결되는 경로를 따라 방향 유도 사인, 야간 반사 스티커, LED 가이드 표지판 등이 체계적으로 설치돼야 한다.
둘째, 모든 지정 대피소 앞에는 QR 코드 기반 대피 정보판이 있어야 한다. 이 QR 코드를 통해 현재 위치, 도보 예상 시간, 주변 위험 지역, 고지대 경고 등 실시간 안내가 가능하도록 연동할 수 있다.
셋째, 야간 조명 및 고령자 접근성 확보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대피소는 계단이나 경사로를 통해 접근해야 하는데, 이 구간에 조명이 부족하고 손잡이나 난간이 없다. 재난 상황일수록 고령자와 장애인의 안전은 더 중요하므로, 보완이 필요하다.
넷째, 비상 설비의 최소 상시 구비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생수, 구급약, 태양광 충전기, 간이 화장실, 간이 텐트 등 최소 물자는 각 대피소마다 창고 또는 상자 형태로 비치되어야 한다.
다섯째, 지역 주민과 관광객 대상 실전 시뮬레이션 훈련 도입이 필요하다. 정동진, 안목해변, 경포대 등 주요 해변마다 연 1회 이상 해일 대피 훈련을 진행하고, 참여자에게는 인증 스티커나 기념품을 제공하는 등 시민 체감형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여섯째, 관광지 기반 대피 앱 개발도 가능하다. 관광객은 현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위치 기반 안내가 가능한 '해변 대피 알림 앱'을 통해 빠르고 직관적인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릉은 한국을 대표하는 바다 도시다. 그만큼 안전 체계도 대표 도시답게 체계적이고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쓰나미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재난이지만, 준비는 반드시 지금부터 해야 한다.
강릉 해안 대피소의 현실은 준비된 듯하면서도 미비한 점이 많았다.
다음 글에서는 속초시 해안 대피소 체계를 비교해, 동해안 재난 대응 현황을 더 깊이 있게 살펴볼 예정이다.
동해안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다면 꼭 함께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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