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남구 재난 대피소 점검기, 공단 근처 지역의 현실
산업도시 울산, 공단 옆 재난 대피소는 안심해도 될까?
울산광역시는 대한민국 대표 산업도시로, 자동차·조선·화학·에너지 등 대규모 제조업 공장이 밀집해 있다. 그중 남구는 울산석유화학단지와 대기업 본사, 대단위 공장이 몰려 있는 지역으로, 화재·폭발·가스누출 등 복합 산업 재난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특히 여천동, 무거동, 삼산동, 야음동 일대는 공장과 주거지가 맞닿아 있어 화학사고와 같은 위험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피할 수 있는 구조인지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공단 주변에는 고령자, 저소득층,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한 원룸촌과 다가구 주택이 많고, 평소에도 지역 주민들은 “재난 발생 시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말한다.
이번 글에서는 울산 남구 내 공단 주변 6곳의 재난대피소를 직접 현장 점검하며, 위치, 표지판 유무, 접근성, 비상 설비 상태, 유해물질 대비 구조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산업 재난 발생 시, 실제로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현장에서 답을 찾아보았다.
울산 남구 재난 대피소 6곳 실측 후기: 공단 옆, 안전한 공간은 드물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야음장생포동 행정복지센터 옆 공터였다. 이곳은 공식 재난대피소로 등록되어 있지만, 표지판이 작고 오래돼 잘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차량 통행이 많은 산업도로였고, 도보 이동 시 신호등이 없어 교차로를 건너기가 매우 위험했다.
두 번째는 삼산동 현대백화점 뒤편 송정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학교 운동장은 넓고 구조상 대피소로 적절해 보였지만, 평일에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출입구에는 안내판조차 없어 재난 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세 번째 대피소는 무거동 태화강변 공원 일부 구간이었다. 넓고 탁 트인 공간이지만, 인근 화학물질 누출이나 폭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바람의 방향에 따라 오히려 2차 노출 위험이 존재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늘이나 비상용 쉼터는 없었고, 벤치 외에는 비상 설비가 확인되지 않았다.
네 번째로 확인한 곳은 신정동 공영주차장 옆 임시 대피소였다. 도로와 인접해 접근성은 좋았지만, 주변이 상업지대로 복잡했고, 공단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나 미세먼지 발생 시 차단 효과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구조였다.
다섯 번째는 여천동 주민센터 지하 대피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실내에 마련된 드문 사례였지만, 고지대가 아니어서 해일이나 폭우 시에는 오히려 침수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실내 환기시설이 부족해, 화학사고 발생 시 대피보다는 오염 확산 우려가 더 클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섯 번째는 울산대공원 북문 주차장 인근 공터였다. 공원은 넓고 개방되어 있어 대피소로 적합한 위치이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냥 산책로인 줄 알았다”고 말할 만큼 대피소라는 인식이 없었다. 비상 안내판은 있었지만 너무 작은 글씨로 되어 있어 실효성이 낮았다.
공단 인근 재난 대피소, 재난 종류에 따라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울산 남구에서 가장 걱정되는 재난 유형은 ‘복합 재난’이다. 예를 들어, 화학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동시에 유해가스가 누출되면, 단순히 운동장이나 공원으로 대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확인한 대피소 대부분은 야외 공간이었으며, 지붕이나 밀폐형 보호구조가 전혀 없는 형태였다.
산업 재난의 특성상 바람을 타고 퍼지는 가스, 폭발 충격파, 유독물질 등에 대응하려면, 차단형 대피공간 또는 고지대 밀폐형 건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구 내 대피소 중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사실상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피소는 공장지대에서 가까운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폭우나 침수에도 매우 취약했다. 특히 장생포, 야음동 일대는 하천과 인접해 있어 여름철에는 수위 상승으로 인해 대피소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또한 고령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을 고려한 접근 경로 설계가 거의 없었다. 일부 대피소는 언덕길이나 계단을 통해 진입해야 하고,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공간도 많아, 대피 중 사고 위험이 존재한다.
대피소 내에 비상 설비가 전무한 것 또한 심각한 문제였다. 생수, 구급 키트, 방독 마스크, 비상 조명, 피난 안내서 등은 어디에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한 주민은 “재난 나면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하며, 실제 훈련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결국, 현재의 대피소 시스템은 ‘일반 자연재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을 뿐, 산업도시 특화 재난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구조라는 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산업도시형 재난대피소 체계, 지금부터 바꿔야 한다
울산 남구 같은 산업도시는 일반 도시보다 다층적 재난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대피소 시스템도 ‘일반형’이 아니라 ‘산업특화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밀폐형 또는 지하 차단식 대피소 설계가 도입돼야 한다. 공단 인근에는 유독가스와 폭발물 누출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지붕 있는 쉼터나 컨테이너형 밀폐 대피소를 설치해, 단기 대기 공간이라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고지대 우선 배치와 바람 방향 분석에 따른 위치 설정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운동장이나 공원에 위치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며, 유해가스 확산 경로를 예측한 과학적 기반 하에 대피소를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산업 재난에 특화된 교육 및 훈련 도입이 시급하다. 현재 대피소 안내는 지진, 화재, 홍수 등 자연재난 위주로 되어 있지만, 울산 남구 주민에게는 ‘유해물질 누출 시 행동요령’, ‘마스크 사용법’, ‘밀폐 공간 찾는 법’ 등이 훨씬 더 실질적이다.
넷째, 다국어 대피소 안내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높은 남구의 특성상, 영어, 베트남어, 중국어 등으로 된 대피소 표지판과 행동 매뉴얼이 병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주민 참여형 재난 훈련과 시뮬레이션 확대가 요구된다. 지역 산업체와 연계해 연 1회 이상 재난 대피 훈련을 실시하고, 실제 상황을 가정한 ‘보호소 대피 훈련’을 통해 시민 체감도를 높여야 한다.
이제 울산 남구는 대한민국의 산업 중심지를 넘어, ‘재난 대응 선도 지역’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다. 안전한 도시란, 평화로울 때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시민의 생명을 지켜낼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울산 남구 공단 주변 대피소의 현실은 시스템보다는 행정 편의적 설계에 가까웠다.
다음 글에서는 울산 북구와 남구의 재난 대응 격차를 비교해,
같은 도시 안에서도 얼마나 다른 환경이 존재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