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청소년이 참여하는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 설계 전략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 장애청소년이 직접 참여할 때 완성된다
재난 대피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재난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구조는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장애청소년에게 재난 대피소는 그 자체로 높은 장벽이 될 수 있다. 단순히 경사로가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정보 접근, 감각적 대응, 집단 환경에서의 행동 적응 등 다층적인 요소가 함께 작동해야 비로소 '안전한 공간'이 된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재난 훈련은 장애청소년을 배제하거나, 보조 대상자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장애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서 동등하게 재난 대응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특히 훈련의 과정에서 장애청소년이 직접 참여하여 문제를 경험하고 개선 방향을 제안하는 활동은 단순한 교육을 넘어 사회적 포용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이 된다. 실제로 장애 당사자의 경험은 비장애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위험 요소나 불편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며, 이는 곧 훈련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은 장애청소년의 직접 참여를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단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훈련에 접근하고, 직접 행동하며, 체험 이후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재난 대피소 훈련은 단순한 반복 실습이 아닌, 진짜 생존 훈련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번 글에서는 장애청소년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지, 그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재난 대피소 훈련은 감각 다양성과 행동 차이를 반영한 설계가 되어야 한다
장애청소년이 참여하는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감각 다양성’과 ‘행동 방식의 차이’다. 청각, 시각, 지적, 자폐성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수신하고, 위험을 인식하며, 대응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일률적인 교육 자료나 훈련 절차만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은 장애청소년에게 실질적인 훈련 효과를 제공하기 어렵다. 오히려 불안과 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
훈련 설계는 먼저 각 장애유형에 맞는 사전 정보 제공 방식부터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은 사전에 훈련 공간의 촉각 지도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청각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시각 정보 기반의 신호 시스템이나 수어 통역이 병행되어야 한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청소년에게는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나 낯선 행동 지시가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훈련 일정과 절차를 시각적으로 예측 가능하게 전달하고 반복적으로 익힐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행동 반응 속도와 이동 방식도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일부 장애청소년은 스스로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훈련 시 타인의 속도에 무리하게 맞추지 않아도 되는 개인 중심의 진행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훈련 전 단계에서 충분한 조율과 개별 맞춤 시나리오가 요구된다. 특정 행동 지점에서는 행동 보조가 가능하도록 훈련 인력의 배치나 구조적 안전장치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설계가 단순히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훈련 효과를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임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훈련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서로 다른 조건에서도 함께 생존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다. 감각과 행동의 차이를 반영한 훈련 설계야말로 그 시작점이 된다.
재난 대피소 훈련은 학교·가정·지역사회가 연결되는 구조여야 한다
장애청소년을 중심에 둔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이 현실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훈련의 무게를 학교에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장애청소년이 머무는 시간과 환경은 학교뿐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에도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훈련 프로그램은 학교에서의 기본 훈련을 바탕으로 하되, 가정에서도 연계 활동이 가능하고, 지역사회에서도 반복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특성과 장애유형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교사와 특수교사가 협업하여 개별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계획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훈련의 연장선으로, 부모나 보호자가 훈련 내용을 이해하고 일상 속에서 비슷한 시나리오를 함께 연습할 수 있도록 안내 자료나 가이드북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반복 학습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 전체가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는 더욱 중요하다. 지역 복지관, 보건소, 소방서, 주민센터 등과의 협업을 통해 실제 재난 대피소에서의 모의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그 과정에 장애청소년과 가족, 교사,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훈련은 단순한 교육에서 벗어나 지역 커뮤니티가 함께 운영하고 책임지는 공동의 과제가 된다.
이처럼 훈련의 환경이 분절되어 있지 않고, 일상적인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반복될 때, 장애청소년은 실제 위기 상황에서도 두려움보다는 익숙함을 기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재난 대피소 훈련은 공간 중심이 아닌 관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구조는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를 하나의 훈련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데서 시작된다.
재난 대피소 훈련은 장애청소년의 ‘사회적 경험’으로 확장돼야 한다
무장애 재난 대피소 훈련은 단지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이 훈련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장애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안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체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훈련은 재난이라는 특수 상황을 가정한 학습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경험과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으로 확장돼야 한다.
실제 훈련 과정에서 장애청소년이 안내자, 감시자, 구조 지원자 등의 역할을 맡아보는 시나리오를 구성하면, 이들은 스스로를 피난 대상이 아니라 ‘기여 가능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자존감 향상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재난의 수혜자가 아닌 함께 대처할 수 있는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역할 연기나 체험을 넘어서, 관계의 재정립을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된다.
또한 훈련을 반복하며 축적된 경험은 평가와 피드백 과정을 통해 교육 자료로 발전시킬 수 있다. 장애청소년이 직접 훈련 이후 느낀 점을 말하고 기록하며, 자신이 개선해야 할 점과 제안하고 싶은 부분을 정리하는 과정은 교육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자료가 지역이나 학교에서 공식적인 피드백 자료로 활용된다면, 그 경험은 단지 개별 청소년의 학습을 넘어 지역 전체의 안전 수준 향상에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훈련은 자폐, 청각, 시각 등 다양한 장애 유형을 가진 청소년이 각자의 조건을 중심으로 사회와 연결되는 실질적인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자신이 겪은 불편과 개선안을 제안하고, 그것이 다음 훈련이나 시설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장애청소년에게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결국, 재난 대피소 훈련은 훈련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애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함께 고민하는 시민으로서의 감각을 키워주는 중요한 경험이어야 한다.
장애청소년이 참여하는 재난 대피소 훈련은 생존 기술 이상의 사회적 경험이다.
다음 글에서는 지역사회가 함께 운영하는 무장애 대피소 인증제 청소년 참여모델을 소개 할 예정이다.
진짜 안전은 함께 설계하고, 함께 훈련하며, 함께 성장할 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