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주도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까지 실현 방법
재난 대피소 훈련, 청소년이 참여자가 아닌 기획자가 될 때 달라진다
재난 대피소는 위기 상황에서 시민의 생존을 위한 필수 공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난 대응 훈련에서는 청소년을 단순한 참여자나 관찰자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구성된 훈련 프로그램 안에서 안내에 따라 움직이거나, 일부 동선을 체험해보는 정도의 활동이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동적인 역할만으로는 청소년 스스로 재난을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는 감각을 키우기 어렵다. 진정한 재난 대응 역량은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을 상상하고 구조를 설계하며 문제 해결 과정을 주도해보는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청소년이 재난 대피소 훈련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훈련 시나리오를 직접 만들며, 운영과 평가에까지 역할을 맡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들은 단순한 학습자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의 안전을 직접 설계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교육의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다. 안전 교육이 정보 중심에서 참여 중심으로 바뀌는 것은 청소년의 책임감과 문제 해결 능력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를 준다. 특히 공동체 내에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은 청소년의 자존감 형성과 사회적 연대감 확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러한 기획 참여형 모델은 이미 국내 일부 지역이나 해외 여러 사례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청소년이 주도한 재난 시나리오는 성인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공간 내 사각지대나, 또래 집단의 행동 심리를 더 정확히 반영해 보다 현실성 높은 훈련으로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재난 대피소 훈련은 더 이상 행정이나 전문가 중심으로만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구조로 확장될 때, 그 훈련은 진짜 지역 사회를 위한 안전 훈련으로 거듭날 수 있다.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의 청소년 기획은 단계별로 설계돼야 한다
청소년이 주도하는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은 단순히 훈련 당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충분한 이해와 학습, 공동 기획과 시뮬레이션, 그리고 훈련 이후의 피드백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설계가 필요하다. 프로그램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하나의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처럼 구성되어야 하며, 단계별로 역할과 과제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청소년은 자신이 만든 훈련의 주인으로서,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갖고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단계는 재난 대피소에 대한 정보 탐색과 문제 인식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학교, 복지기관 등에 설치된 대피소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그곳을 사용하는 다양한 계층—예컨대 장애인, 어린이, 노인—의 입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은 단지 공간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공간의 기능과 한계를 분석하는 시각을 기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시설 견학과는 완전히 다른 교육적 효과를 지닌다.
그 다음 단계는 훈련 시나리오의 개발이다. 실제 재난 유형을 가정하고, 대피소까지 이동하는 동선과 대피소 내에서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구성한다. 이때 청소년들은 각각의 역할을 나누어 훈련 스텝, 관찰자, 응급 상황 담당자, 안내자 등으로 배정되어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해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의 협업과 피드백 구조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열린 구조로 진행하되, 일정 기준과 원칙은 지도 교사나 지역 안전 담당자가 함께 정리해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훈련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청소년 중심의 평가 회의를 진행하여, 훈련의 장단점과 개선사항을 정리하고 그 내용을 문서화하는 과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이렇게 구축된 순환 구조는 단지 한 번의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지속적으로 지역 안전 체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학교 교육과정, 지역 자치회, 청소년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분야와도 자연스럽게 연계될 수 있다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은 학교·지역사회와 협업 체계를 갖춰야 한다
청소년이 주도하는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은 청소년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이 프로그램이 교육적, 행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업 체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학교는 학습 기반과 청소년 참여 구조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며, 지역사회는 실질적인 인프라와 전문가 자원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이 둘이 협력할 때 청소년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훈련은 현실적인 가능성을 갖게 된다.
학교에서는 안전교육의 정규 수업, 자유학기제, 창의적 체험활동, 프로젝트형 동아리 운영 등 다양한 교육 틀 안에서 훈련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유학기제에서는 ‘재난 안전’이라는 주제로 탐구 활동을 진행하며 실제 훈련 기획과 실행을 과제로 삼을 수 있고, 동아리에서는 안전 리더 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지역의 재난 대피소를 조사하고 훈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이처럼 학교는 청소년이 훈련을 기획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제공하는 핵심 공간이다.
반면, 지역사회는 훈련 프로그램에 실질적인 자원과 경험을 제공한다. 지역 행정기관은 실제 대피소에 대한 정보, 훈련 장소 제공, 안전 전문가 연결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율방재단이나 지역 소방서, 보건소 등은 청소년이 만든 시나리오가 현실성과 안전성을 갖추도록 지도할 수 있다. 특히 지역 공무원이나 소방대원과의 협업을 통해 청소년은 자신이 만든 훈련이 행정이나 실무의 언어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이는 교육 이상의 동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협업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경우, 훈련은 단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역 커뮤니티의 정례적 행사로 발전할 수 있다. 청소년은 매년 조금씩 더 높은 수준의 기획을 시도하고, 지역은 그 기획을 수용하고 확장하면서 재난 대응 문화를 함께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학교와 지역이 함께 청소년의 시민 역량을 키워주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재난 대피소 훈련은 청소년의 사회 참여와 안전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
청소년이 주도하는 재난 대피소 훈련 프로그램은 단지 안전교육을 잘 이수했다는 평가를 넘어서, 그 자체로 사회 참여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청소년 참여는 주로 자원봉사나 진로 체험에 국한되었지만, 재난 대응이라는 실질적 영역에서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고 실제 활동을 조직해본 경험은 청소년의 사회적 자율성과 주체성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훈련이라는 실천 활동을 통해 청소년은 자신이 지역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자각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지역에 대한 책임 의식과 공동체 감각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 훈련이 반복적으로 운영되고, 그 안에서 청소년의 기획과 제안이 실제로 적용되는 구조가 된다면, 그 경험은 더욱 강력한 동기와 영향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특정 해에 청소년이 제안한 비상구 조명 개선 사항이 실제로 설치로 이어졌다면, 그들은 ‘목소리가 반영되는 사회’를 경험하게 되고, 이는 시민으로서의 주체적인 자세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교육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 확대까지 이끌 수 있는 경로가 된다.
또한 청소년이 만든 훈련 콘텐츠는 다른 지역이나 기관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학교 간 네트워크, 청소년 자치회 연합, 지역 교육청의 지원을 통해 성공적인 훈련 모델은 매뉴얼화되어 전국적으로 공유될 수 있고, 이를 통해 청소년 참여 기반의 재난 훈련 문화가 점차 확산될 가능성도 생긴다. 이는 교육 혁신이자 지역 안전 문화의 진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재난 대피소 훈련을 통해 청소년은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니라, ‘지키는 역할을 함께할 수 있는 존재’로 재정의된다. 사회는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그 책임은 또 다른 권한과 가능성으로 돌아온다. 지금까지의 안전 교육이 수동적이고 일방적이었다면, 청소년 중심의 훈련은 그 흐름을 완전히 뒤집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진짜 안전은 모두의 참여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모두’ 안에는 반드시 청소년이 포함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기획한 훈련은 단순한 교육이 아닌, 사회 참여와 공동체 안전의 시작점이다.
다음 글에서는 장애청소년이 참여하는 무장애 대피소 훈련 설계 전략을 소개 할 예정이다.
참여와 포용, 이 둘이 만날 때 안전은 비로소 모두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