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제주시 재난 대피소 7곳 실측 후기
관광 도시 속 재난 대피소의 실체를 확인하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동시에 활화산이 존재하는 섬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재난 리스크를 안고 있다. 특히 제주시 지역은 공항과 항만, 행정 기관이 몰려 있어 인구 밀도도 높고, 유동 인구까지 합하면 매일 수십만 명이 움직이는 지역이다. 그런데 만약 지진, 해일, 화산 폭발, 태풍 등의 재난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피해야 할까?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고립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초기 대피 공간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많은 이들이 제주에 휴양을 오지만, 정작 재난 발생 시에는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정안전부와 제주도청은 여러 재난대피소를 지정해놓고 있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는 단편적이며, 현장의 실질적인 상황은 확인된 바 없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제주시 내 주요 대피소 7곳을 직접 방문해, 실제로 재난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가, 접근성과 설비는 어떤 수준인가, 관광객과 시민들이 실제로 피난 가능한 공간인지를 하나하나 확인해보았다. 종이에 적힌 ‘대피소’가 아닌, 현장에서 체감한 안전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제주시 재난 대피소 7곳 실측 탐방기
- 제주도청 옆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
공식 지정 대피소 중 하나로 확인되었지만, 대피소 표지판이 없고, ‘주차장’이라는 용도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주차 면수는 넉넉했지만, 그늘이나 음영지대가 전혀 없어 여름철 햇볕에는 매우 취약할 것으로 보였다. 화장실은 인근 건물 내부를 사용해야 하나, 재난 시 개방 여부는 미지수였다.
- 제주중앙초등학교 운동장
시내 중심에 있어 접근성은 탁월했지만, 학교라는 특성상 평일에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운동장 자체는 넓지만, 대피소 안내 표지판은 없었고, 벤치나 응급 물품은 물론 임시 쉼터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의 결과, "재난 발생 시 개방 예정"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 오라2동 주민센터 뒷편 공터
도보 이동 거리는 양호했으나, 매우 협소하고 울퉁불퉁한 지면 상태로 대규모 인원 수용은 불가능해 보였다. 주변 상가와의 거리가 가까워 소음과 혼잡도 우려되었고, 야간 조명도 부족했다. 고령자나 어린이에게는 오히려 위험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 제주시청 옆 중앙공원 일부 구역
도심 한복판에 있어 접근성은 매우 좋았지만, 공원이 너무 넓고 구체적인 대피 구역이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안내 표지판에는 ‘재난대피소’라는 문구 없이 단순한 공원 지도만 있었으며, 실제 대피 시 혼란이 예상된다. 이곳도 그늘막이나 비상 식수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 연동초등학교 운동장
공항과 가까운 지역이라 공항 이용객이나 관광객 대피용으로는 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학교 담장이 높고, 외부에서 진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운동장 내 바닥은 관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화장실이나 음수대는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는 구조였다.
- 노형근린공원
노형동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커버하는 대피소로, 비교적 넓은 공간과 적절한 쉼터가 있었지만, 벤치 외의 재난 대비 설비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공원 내 안내판이 오래되고 낡아, ‘여기가 대피소라는 사실’을 모르는 주민들도 많았다. 대피소임을 명확히 알릴 수 있는 시각적 요소가 부족했다.
- 제주종합경기장 보조경기장
대규모 수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가장 안정적인 대피소 중 하나였다. 다만 평상시에는 체육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출입하기는 어려웠다. 건물 내부 대기 공간이 있었지만, 실제 재난 발생 시 개방 시점과 담당 기관 정보가 부족했다.
현실과 이상 사이: 제주시 재난 대피소의 실질적 문제점
이번에 실측한 제주시 대피소 7곳 모두 ‘문서상으로는’ 지정되어 있었지만, 현실적인 대피 가능성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가장 공통적인 문제는 안내 표지판 부족이었다. 대피소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이를 인지할 수 있는 시각적 요소가 거의 없었다. '지정됐다'는 행정 정보만으로는 실제 재난 시 시민들이 인지하고 이동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두 번째로는 접근성 제한이다. 대부분의 대피소가 학교나 공공시설 내에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심지어 운동장조차 폐문되어 있거나 잠금 장치가 있어, 비상시 ‘누가 열어주며 언제 열리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이는 특히 관광객들에게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세 번째는 비상 물자 및 설비의 부재다. 쉼터, 그늘막, 생수, 구급상자, 전기 충전소, 비상 조명 등 최소한의 긴급 대응 설비가 설치된 대피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특히 제주처럼 여름에 폭염이 심하거나 겨울에 돌풍이 부는 지역에서는 대피소가 단순 ‘공간’ 이상이어야 한다.
네 번째는 관광지 특성의 미반영이다. 제주시에는 외국인을 포함한 관광객이 수시로 방문하지만, 다국어 안내판이나 재난 대응 정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관광안내소조차도 “재난 시에는 몰라요”라고 답하는 수준이었다.
다섯 번째는 연계 체계의 부재다. 공항, 항만, 호텔, 시내버스터미널 등과 연계된 대피 안내 시스템이 전혀 없고, 버스나 택시에 탑승해도 어떤 경로로 이동하라는 안내가 없다. 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변수인데, 현재 시스템은 너무 이상적인 구조에만 의존하고 있다.
제주형 재난 대피소 모델을 위한 제언
제주도는 그 지리적 특성과 관광 구조 때문에, 표준적인 내륙형 대피소 모델로는 한계가 있다.
우선 첫째, 시민 및 관광객 대상 재난 대피 인식 교육과 정보 전달 강화가 시급하다. 공항, 항만, 렌터카 사무소, 호텔 체크인 시점에 ‘재난 대피소 위치’에 대한 안내지가 배포되어야 한다. QR 코드 기반의 모바일 대피소 지도 서비스와 같은 IT 솔루션 도입도 검토할 만하다.
둘째, 시각적으로 명확한 안내 체계가 필요하다. 모든 대피소에는 공통된 디자인의 재난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야 하고, 특히 다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가 병행돼야 한다.
셋째, 개방형 대피소 운영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필요 시 개방’이라는 방침은 긴급 상황에서 혼란만 초래한다. 누구의 책임 하에, 언제, 어떻게 대피소가 개방되는지 주민과 기관 모두가 명확히 알아야 한다.
넷째, 소규모 대피소의 지역 분산화가 필요하다. 도심 중심 대피소 몇 곳만으로는 대규모 재난 발생 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오히려 골목길 주변, 아파트 하단, 공영주차장 등을 활용한 마이크로 대피소(임시 쉼터 형태) 확산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실질적인 모의 훈련과 체험 중심 프로그램 도입이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재난 대비 워크숍, VR 시뮬레이션 훈련 등을 통해 재난 대응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행정기관의 일방적 발표가 아닌, 시민이 체감하고 참여하는 구조가 진짜 ‘작동하는 대피 체계’다.
제주 제주시의 대피소, 행정적 지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글에서는 서귀포시 지역의 대피소 실태를 비교 분석해
관광지 중심 도시의 재난 대응 현황을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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