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대피소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본 재난 대피소, 보이지 않는 위험은 더 크다

ppulimyblog 2025. 7. 20. 21:58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본 재난 대피소, 보이지 않는 위험은 더 크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위협을 준다. 그러나 재난 대피소로의 접근과 정보 전달에 있어, 시각장애인이 겪는 현실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는 누구나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구조를 강조하지만, 대피소가 실제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설계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시각장애인의 재난 대피 과정은 다음의 두 가지를 필수로 요구한다.
첫째, 물리적인 접근성, 즉 안전하게 대피소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정보 전달 방식, 즉 그들이 현재 상황과 대피 방법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 속 대피소는 대부분 ‘비장애인 시선’에 맞춰져 있다.
출입구에 점자 안내가 없거나, 이동 경로에 점자 블록이 끊기고, 방송 외에 다른 방식의 정보 전달 수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5년 기준, 전국 등록 대피소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판이 설치된 곳은 약 20% 미만에 불과하다.
음성 안내 기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피 유도선이나 점자 유도 라인은 중간에 끊기거나 방치된 곳이 많다.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본 재난 대피소


이 글에서는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재난 대피소의 구조적 문제와 정보 전달의 실태를 분석하고,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보이지 않아도 안전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모두를 위한 대피소다.

시각장애인 기준 재난 대피소의 접근성 실태

재난 대피소의 ‘물리적 접근성’은 시각장애인의 생존 여부를 좌우한다.
도달하지 못하는 대피소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는 대피소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  점자 유도 블록과 대피 경로의 문제

많은 대피소는 대형 건물 안에 위치해 있지만, 대피소 입구까지 이어지는 점자 유도 블록이 설치되지 않았거나, 중간에 끊겨 있음

점자 블록이 설치되어 있더라도 적재물로 덮여 있거나, 건물 구조 변경으로 인해 방향성이 어긋나 있는 경우도 많음

비상 상황에서 이동해야 할 통로에 계단, 턱, 안내 없는 경사로가 존재하여 시각장애인 단독 이동이 거의 불가능

- 출입구 접근성

시각장애인이 출입구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점자 표지, 음성 유도 장치 부재

문 자체가 회전문, 양방향 밀문 등 구조적으로 혼란을 유발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 스스로 진입이 어려움

문 앞 공간에 방해물이 있거나, 출입 방향이 명확하지 않음

 

예를 들어, 경기도의 한 공공체육시설은 지역 내 대표 대피소로 지정돼 있으나,
주 출입구에 점자 블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문에는 아무런 점자 표시도 없어 시각장애인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시각장애인은 재난 발생 시 스스로 주변 환경을 파악해 이동할 수 없다.
따라서 점자 유도 시설과 안내음성 시스템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이며, 이것이 갖춰지지 않은 대피소는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무용지물이다.

재난 대피소 내 정보 전달 방식, 시각장애인을 고려하고 있는가?

시각장애인이 대피소에 도착했다고 해도, 그 공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없다면 그곳은 또 다른 공포의 장소가 된다.
대피소 내부의 정보 전달 방식은 대부분 시각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시각장애인은 기본적인 이용 정보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 시각 중심의 비효율적 정보 전달

비상 대피 경로, 화장실 위치, 관리자 연락처 등 모든 정보가 인쇄물이나 벽면 글자로만 제공

대부분의 대피소는 점자 안내판, 음성 유도기, 비상 방송 리모콘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 장치가 없음

상황 방송이 이뤄지더라도, 스피커 위치가 멀거나 음성이 명확하지 않아 정보 전달 효과가 떨어짐

- 개선되어야 할 핵심 장치

1. 점자 안내판 – 벽면, 출입문, 화장실, 급수대 등 주요 위치에 점자 정보 제공

2. 음성 유도기 – 대피소 내 주요 장소에 접근 시 자동으로 안내 음성 출력

3. 보이스 버튼 – 시각장애인이 눌러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비상 안내 시스템

4. 스피커 정비 – 명료한 음성 전달을 위한 고출력 스피커 설치 및 정기 점검

 

실제 대전의 한 도서관 대피소에서는, 점자 안내판이 화장실 문에만 붙어 있었고, 내부에는 아무런 음성 안내도 제공되지 않았다.
결국 시각장애인은 도움 없이 어떤 시설도 사용할 수 없었던 셈이다.

대피소는 단순히 ‘대피하는 장소’가 아니라 정보를 얻고 생존하는 공간이다.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현재 대부분의 대피소는 불통의 공간일 뿐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난 대피소, 지금부터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재난 대피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편의시설 설치’ 이상의 접근이 필요하다. 장애를 고려한 설계 철학과 운영 체계 전체가 달라져야 한다.

- 제도적 대책

재난 대피소 설치 시 ‘시각장애인 접근성 체크리스트’ 의무화

대피소 점검 항목에 점자 안내 여부, 음성 유도 시스템 작동 여부 포함

점자, 음성 안내가 없는 대피소는 지정 해제 또는 보완 조치 의무 부과

- 인프라 구축

전국 공공 대피소에 점자 유도 블록 표준화 설치

음성 안내 시스템(보이스 비컨) 의무 설치, 건물 입구와 실내 주요 위치에 배치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무선 음성 안내 앱 개발 및 보급 (예: NFC 활용 자동 안내)

- 운영 시스템 개선

대피소 운영자에게 장애인 대상 응급 대응 교육 이수 의무화

비상시 시각장애인을 우선 도울 수 있는 ‘시각장애인 대피 도우미’ 제도화

지역 내 장애인 단체와 협력하여 실제 체험기반 개선 피드백 반영

 

이와 더불어, 시각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느끼는 불편과 위험을 직접 듣고 반영해야, 실효성 있는 안전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종이상 정보가 아닌, 진짜 작동하는 안전망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이지 않아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
그 당연한 말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청각장애인 기준 재난 방송 시스템과 대피소 정보 접근성 실태를 정리해볼 예정이다.
함께 나아가자, 모두가 대피할 수 있는 사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