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동물은 재난 대피소에 갈 수 있을까? 직접 문의해보니 알게 된 현실
재난 상황, 가족 같은 반려동물은 어디로 가야 할까? 재난 대피소에 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구는 1,500만 명이 넘는다. 반려견, 반려묘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닌 가족 구성원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특히 1인 가구, 노년층, 비혼 가구가 증가하면서, 반려동물은 정서적 의지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재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지진, 홍수, 폭우, 화재, 산불 등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은 어떨까?
지금의 대피소 체계는 과연 반려동물을 품을 수 있을까? ‘반려동물도 함께 대피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생존과 이별이 걸린 현실적 질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실제로 전국 지자체 및 재난안전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재난 시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가, 재난 대피소에서 동물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나 기준이 마련되어 있는가?를 직접 문의해 보았다.
이 글은 그 답변을 바탕으로 지금 한국 사회가 반려동물의 안전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 그리고 어떤 점이 부족하며, 무엇이 필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체험형 리포트다.
실제 문의 결과, 대부분의 재난 대피소는 ‘반려동물 수용 계획 없음’
실제로 필자는 서울, 경기, 부산, 대전, 광주 등 5개 광역시 및 수도권 기초지자체 총 10곳의 재난안전과, 동물복지과, 주민센터 등 관련 부서에 직접 문의를 진행했다.
질문은 크게 다음과 같았다.
- 재난 발생 시, 대피소에 반려동물과 함께 입장이 가능한가요?
- 반려동물 전용 재난 대피소나 동반 재난 대피 구역이 따로 존재하나요
- 재난 대피소에서 반려동물 관련 규칙이나 지침이 있나요?
이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유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식 지침상 불가하거나, 지자체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 대다수의 입장이었다.
- 서울 강서구청 재난안전과: “현재는 사람 중심의 대피소만 운영되고 있으며, 동물은 별도 수용 시설이 없습니다.
- 수원시청 동물보호팀: “2023년부터 반려동물 동반 대피 시범 사업을 검토하고는 있으나, 실질적으로 운영 중인 곳은 없습니다.
- 부산 남구청 주민센터: “재난 상황에서 반려동물은 대피소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인근에 임시 보호시설이 마련될 수도 있으나 사전 협약은 없습니다.
- 대전 유성구청: “현재 기준상 반려동물 수용 계획이 없으며, 대피소 내에서는 위생 문제와 민원 발생 우려가 있어 어렵습니다.
- 광주 북구청: “예외적으로 입장이 가능한 경우도 있겠지만, 원칙적으로는 별도 공간을 마련한 적은 없습니다.”
이러한 답변을 종합해보면, 국내 대부분의 대피소는 반려동물을 위한 공간이나 규칙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으며, 위기 상황 발생 시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는 방침이었다.
결국 반려동물 보호자는 재난 상황에서 가족을 데리고 재난 대피소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주민센터 직원은 “그럴 땐 차에 태워두거나 지인에게 맡기라”고 권했지만, 재난 상황에서 그러한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이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정하고 무책임했다.
왜 반려동물 재난 대피소는 준비되지 못했을까? 구조적 문제 5가지
실제 문의 결과가 예상보다 더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정책, 제도, 사회 인식 모두에서 반려동물의 재난 대응 체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법적 근거 부재
현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자연재난법 등에는 반려동물의 대피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보호법에도 재난 시 대피 관련 조항은 극히 제한적이다. 즉, 지자체는 반려동물 수용을 ‘해야 할 의무’가 없다.
- 예산과 인프라 부족
대피소 공간을 사람 중심으로만 설계한 탓에, 동물 수용을 위한 펜스, 배변공간, 케이지, 사료, 물통 등의 설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인건비와 물자 확보 등의 추가 예산 확보 문제도 걸림돌이다.
- 위생·민원 우려
다수의 관계자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 알레르기 있는 사람, 소음 등으로 인한 민원 가능성 때문에 수용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는 동물과 사람을 분리 수용하는 대피소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 인식 격차
행정 기관 대부분은 여전히 동물은 재난 시 배제해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는 반려동물이 가족 구성원이라는 사회 변화에 비해, 정책이 뒤처져 있다는 방증이다.
- 책임 전가 구조
결국 “임시 보호소를 민간에서 알아서 찾아라”, “지인이 맡아야 한다”, “차량에 두라”는 식의 책임 전가가 주를 이룬다. 이로 인해 많은 반려인이 재난 상황에서 동물을 유기하거나, 스스로 대피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향후 재난 발생 시 사람과 동물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예고한다. 아직도 우리는 대피소라는 말 속에 반려동물을 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도 함께 재난 대피소로 피할 수 있으려면? 제도적 대안과 제안
그렇다면 반려동물도 함께 대피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선진국 사례와 국내 시범 사업 등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제도적 제안이 가능하다.
- 법적 지침 마련
재난안전법 및 동물보호법에 ‘반려동물 동반 대피 권리’와 ‘지자체 수용 의무’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이는 모든 지자체가 최소한의 대응 체계를 갖추는 기반이 된다.
- 사람-동물 분리형 대피소 모델 도입
해외 사례처럼, 사람과 반려동물이 각각 분리된 구역에서 머물 수 있는 구조를 시범 운영할 필요가 있다. 케이지, 펜스, 간이 위생 공간 등을 갖춘 ‘동물 동반 존’을 확보하면 민원 우려도 줄일 수 있다.
- 반려인 대상 행동 매뉴얼 배포
정부나 지자체는 ‘반려동물 재난 행동 요령’을 담은 안내문을 제작하고 배포해야 한다. 사료 키트 준비, 예방접종 완료 여부, 목줄·이동장 훈련 등을 사전에 준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지역 보호소와 협약 체결
지역 동물병원, 보호소, 펫호텔 등과 지자체 간 비상 협약 체결을 통해 임시 보호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반려동물 전용 임시 대피소를 운영하거나, 특정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 주민센터-관리사무소 중심 자율 대피 체계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에서 자율적으로 반려동물 대피 구역을 준비하도록 유도하고, 주민센터와 연계해 소규모 커뮤니티 재난 대피소 운영도 시도해볼 수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사회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문화의 반영이다. 지금은 늦었지만, 다음 재난이 오기 전엔 준비할 수 있다.
재난은 모두에게 닥치고, 반려동물도 그 안에 있다.
다음 글에서는 재난 시 반려동물 유기 사례와 생존률 통계 분석을 통해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함께 알아볼 예정이다.